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 경위 == * [[1973년]] 첫째인 장남[* [[1973년]] [[10월]]생이며 현재 나이는 [age(1973-10-01)]세이다.]이 태어남. * [[1979년]] 대출에 의한 부담으로 장남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다. 그 후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취학통지가 오지 않자 어머니는 관공서를 찾아간다. 그 때 사라진 아버지가 [[혼인신고]]와 [[출생신고]]를 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다. * [[1982년]] 둘째 딸[* [[1982년]] [[11월]]생이며 현재 나이는 [age(1982-11-01)]세이다.]이 태어남. 출산장소는 병원 등이 아닌 집이었다. * [[1983년]] 셋째 아들[* [[1983년]] [[11월]]생.]이 태어남. 이 아이는 출생 직후 사망했다. * [[1984년]] 넷째 딸[* [[1984년]] [[9월]]생이며 현재 나이는 [age(1984-09-01)]세이다.]이 태어남. * [[1985년]] 다섯째 막내 딸[* [[1985년]] [[9월]]생.]이 태어남. * [[1987년]] 가을 무렵,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동거하기 위해 아이들의 어머니는 첫째에게 동생들을 떠맡기고 집을 나간다. 이후 어머니는 생활비로 몇 만엔 정도를 송금했으며 가끔 아이들을 보러 나타나곤 했다. * [[1988년]] [[4월]] 당시 2세[* 당시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.]였던 막내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, 그 때 놀러왔었던 첫째의 친구들이 옷장에서 막내 위로 뛰어 내리거나 때리는 와중에 두부손상으로 결국에 '''사망'''에 이르렀다.[* 당시 첫째가 친구들과 함께 폭행에 가담했다는 혐의가 있었으나 결국에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그 후 고아원 송치가 결정되었다.] * [[1988년]] [[7월 17일]] 집주인으로부터 이 집으로 비행 청소년들이 몰려든다는 신고를 받은 스가모 경찰서는 조사를 위해 경찰을 파견한다. 조사결과, 세 아이들과 아기의 백골이 발견되었다. 당시 첫째 장남은 14세, 둘째 장녀는 5세, 셋째 차남은 이미 백골화된 상태였으며 넷째 차녀는 3세였다. 당시 부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, 이후 세간에 이 사건이 알려지게 되었다. * [[1988년]] [[7월 18일]] 도쿄 토시마에 있는 아파트의 집주인이 "어머니가 집에 아이 3명을 내버려 둔 채 귀가하지 않는다."라고 경찰에 신고하였다. 복지 사무소 상담원이 집을 방문하자, 세 아이만 있고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. 방 안에 옷가지들이 산만하게 펼쳐져 있었고, 커튼도 닳아버린지 오래인 상태였으며 음식물 쓰레기가 부패한 듯한 냄새가 가득했다는 상담원의 증언이 있었다. 첫째에 따르면, 아이들 3명은 [[이부형제|각각 아버지가 다르지만]]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에서 생활하였으며 학교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. 어머니는 [[1987년]] [[10월]]에 집을 나간 후 가끔 돌아왔지만 [[1988년]] [[1월]]부터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가끔 2~3만 엔의 생활비를 송금할 뿐 '''어머니로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.''' 첫 째는 어머니가 주고 간 생활비로 슈퍼에서 [[빵]]과 [[주먹밥]] 등등의 정크푸드를 사 함께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. 가스나 전화는 이미 끊겼으며, 전기도 마찬가지였다. 집세도 [[2월]]부터 미납되어 있었다. 놀랍게도 주변 주민들은 이러한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. 이는 주변의 무관심 때문이거나, 혹은 어머니의 철두철미한 교육 탓일 수도 있다. 두 딸들은 영양실조 상태였기 때문에 이 날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졌다. 첫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애매한 내용이 많았으며, 둘째의 진술에서 첫째가 동생들을 돌보고 있었다는 것이 파악되었다. 아이들은 그동안 [[편의점 도시락]] 등의 정크푸드를 먹으며 살고있었기 때문에 [[영양실조]] 상태였다. * [[1988년]] [[7월 20일]] 첫째 장남의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. 사실 첫째는 학교에 갈 나이인데도 낮에 놀고있는 경우가 많았고, 이를 의심스럽게 생각한 어른들이 "어느 학교에 다니니?" 라고 물으면 그는 항상 "릿쿄 초등학교"라고 대답했다. 이는 어머니가 그렇게 대답하도록 시킨 것이었다. 릿쿄 초등학교는 [[릿쿄대학]] 부설 초등학교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처럼 보여야 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킨 것으로 보인다. * [[1988년]] [[7월 23일]] TV 뉴스에서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경찰서를 방문한다. 본인의 증언으로 9개월 전에 집을 나왔고 다섯째 막내 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. * [[1988년]] [[7월 25일]] 막내 딸이 친구들의 폭행으로 사망했으며 시신은 사이타마현 치치부시 근처 덤불에 묻었다는 증언이 첫째로부터 나왔다. * [[1988년]] [[8월]] 어머니가 보호책임방임 및 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을 받는다. 첫째는 막내 딸의 폭행에 가담했다는 혐의와 함께 상해치사 및 사체유기로 도쿄가정법원에 송치되었지만, 상황을 고려하여 고아원에 보내진다. 당시 검사들은 기소가 되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이 사건만은 굉장히 이례적으로 처리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